장례식장에서 배운 삶의 주도권: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법

2026-01-16


장례식장에서 문득, 나이 듦을 실감하다

요즘 들어 나이 먹는 걸 정말 실감합니다. 연이은 부고 문자가 올해만 벌써 세 번째였고, 얼마 전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상주는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직급은 선배였고, 제 막내 시절 일을 엄격하게 가르쳐줬던 호랑이 사수이자, 한편으로는 아끼던 동생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뒤 가끔 모임에서 얼굴을 보다가, 어느 순간 5년 정도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그는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런 자리에서야 겨우 만나게 되는 현실이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조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하나둘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6년 전 함께 고생했던 선배들이 어느새 10명쯤 모였습니다. 얼굴에는 세월이 얹혔지만 말투와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말이 16년이지, 그 시간 동안 모두가 얼마나 많은 굴곡을 지나왔을까요.


사라진 회사, 달라진 인생들

섹션 3 이미지

제가 다니던 회사는 방만한 경영 끝에 결국 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배가 불렀습니다. 지금은 기업가치가 수조 원에 달하는 어느 기업과 대등한 수준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무합니다. 저는 사표를 쓰고 제 발로 나왔지만, 5년 뒤 구조조정이 닥쳤고 선배들은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들은 근황은 각자의 인생이 얼마나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보여줬습니다.

  • 어떤 선배는 대기업 임원이 되었고
  • 어떤 선배는 창업을 해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 식당을 운영하는 선배도 있었고
  • 여전히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서로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또 살아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3기”라는 단어가 던진 충격

그런데 옆자리에서 들려온 한 소식이 분위기를 바꿔놓았습니다. 정말 똑똑했고 회사에서 인정받던, 옆 팀 팀장님. 신망이 두터웠고 브레인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3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상하게 말문이 막혔습니다. 누군가의 건강 소식은 언제나 충격이지만, 특히 ‘그 사람’이 아플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과, 삶이 안전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그날 다시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 속에서 살곤 합니다.

  •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좀 쉬자”
  • “승진만 하면 여유가 생기겠지”
  • “지금만 버티면 나중에 행복해질 거야”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순서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건강은 미루는 순간, 다른 방식으로 값을 치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 10시, 집으로 가는 길에 찾아온 그리움과 거리감

섹션 4 이미지

어느새 시간이 흘러 오후 10시가 됐고,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향했습니다. 저도 걸어 나오는 길에 옛 생각이 났습니다. 참 치열하게 살았고,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단호합니다. 아니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현실은 늘 빡빡했고, 그 시절의 저는 매일 다음을 반복했습니다.

  • 아침마다 출근 전쟁
  • 실적 압박과 숫자에 쫓기는 하루
  • 내 시간과 몸을 갈아 넣는 업무 방식
  • 주말에 ‘강제로’ 해야 했던 축구
  •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였던 회식 문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그때보다 훨씬 더 저를 잘 압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무너지지 않는지를요.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좋습니다.


퇴사 이후의 불안, 그리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는데, 문득 16년 전 그날이 떠올랐습니다. 호기롭게 사표를 쓰고 나왔지만, 사실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사람을 갉아먹습니다. 어떤 날은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는 ‘정답’이 없었습니다. 대신 ‘버티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됐습니다.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내 손으로 조금씩 가져오는 작은 선택들의 합이라는 걸요.

제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특히 크게 느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1)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은, 일을 잘하는 능력보다 먼저 관리해야 한다 2) 내 삶의 주도권은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장례식장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문장은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안전망이 되어주지는 않습니다.


삶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기준들

‘삶의 주도권’은 감성적인 단어처럼 들리지만, 제게는 아주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저는 요즘 아래 기준들을 자주 점검합니다.

1) 내 시간의 사용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

섹션 1 이미지
  • 오늘 내 일정은 내가 결정했는가
  • 거절해야 할 일을 습관처럼 떠안고 있지는 않은가
  • 쉬는 날에도 일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간은 돈보다 더 쉽게 새고, 더 늦게 후회가 찾아옵니다.

2) 내 몸은 ‘정상’이 아니라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 잠이 부족해도 버티는 걸 성실함으로 착각하진 않는가
  • 통증, 피로, 두근거림 같은 작은 신호를 무시하고 있진 않는가
  • 건강검진 결과를 ‘나중에’로 미루고 있진 않은가

몸은 참고 견디면 적응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무너집니다.

3) 내 마음은 누구의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섹션 2 이미지
  •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내 기준을 잃진 않았는가
  • 성과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느끼진 않는가
  • 비교가 습관이 되어 나를 갉아먹고 있진 않은가

마음의 건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관리해야 오래 갑니다.


장례식이 남긴 다짐: 건강과 주도권을 함께 지키기

섹션 5 이미지

장례식은 끝났지만, 그날의 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픈 팀장님’ 소식은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잘나가던 시절을 함께 지나온 사람일수록, 그리고 존경했던 사람일수록, 그 소식이 더 큰 울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면서
  •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 오늘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으면서

살아가겠다고요.

우리는 종종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더 단단해졌다는 뜻이니까요. 추억은 아름답게 남겨두고, 오늘은 오늘답게 살면 됩니다.

부디 아프신 팀장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빕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너무 늦기 전에 당신의 건강과 삶의 주도권을 꼭 챙기길 바랍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지금의 내가 더 좋으려면, 지금의 나를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