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70여 년 만의 큰 변화,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
2025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던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족 간 재산 범죄는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시대의 관행이, “피해자가 원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피해자 중심의 원칙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번 변화는 단순히 법 조항 하나가 바뀐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보호막이 되던 구조가 사라지면서, 재산 범죄의 책임·구제·권리 보호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랫동안 ‘가족 내부 문제’라는 말로 침묵을 강요받아온 피해자들에게는 사회가 보내는 분명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친족상도례 뜻: 왜 이런 제도가 존재했을까?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특례 조항으로, 가족 내부의 재산 문제는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적용 대상과 범위(기존 기준)

기존 친족상도례는 다음 관계에서 발생한 절도·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직계혈족(부모-자녀)
- 배우자
- 동거친족
-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여기서 핵심은 ‘가족이니까 선처’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형이 면제되어 처벌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사실상 형사법 영역에서 ‘문턱’이 높게 세워져 있었던 셈입니다.
왜 비판을 받았나: 현대 사회와 충돌한 지점

문제는 가족의 형태와 경제 구조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대가족, 공동 생계 중심의 사회와 달리, 현대의 가족은 더 다양해졌고 재산·소득 관리 방식도 복잡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족상도례는 다음과 같은 사각지대를 만들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경제적 학대가 가려지는 문제
- 피해자가 막대한 손해를 입어도 형사적으로는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
- 가해자가 제도를 ‘면책 장치’로 활용하는 사례 증가
결국 “화목을 지키자”는 의도가, 일부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권리를 지우는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바꾼 흐름: ‘헌법불합치’의 의미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문제가 있다” 수준이 아니라,
- 해당 규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으니
- 입법자가 시한 내에 고치되
- 그때까지는 법적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는 강한 취지의 결정입니다.
즉, 법 자체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가적 결론이 내려진 것이고, 이번 국회 통과로 그 개정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수홍 사건: 친족상도례의 허점이 대중에게 ‘보이게’ 된 계기
이번 개정 논의에 불을 붙인 사건으로 방송인 박수홍 씨 사례가 자주 언급됩니다. 친형 부부가 출연료 등 약 6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박 씨 부친이 “실제 자금 관리는 내가 했다”고 주장한 정황이 알려졌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 구조 때문입니다.
- 형제간이라도 비동거라면 처벌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음
- 그러나 부모-자식 관계(직계혈족)는 친족상도례가 강하게 작동해 형이 면제되는 영역이 존재
따라서 “부친이 했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와 별개로, 대중은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 가족 내 신뢰를 이용한 범죄인데도
- 법의 구조상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이 사건은 결국 친족상도례가 ‘가족 화목’의 장치라기보다, 특정 상황에서는 가해자의 도피처로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을 사회에 선명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은 이런 악용 가능성을 줄이고, 최소한 피해자가 원할 때는 법이 개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개정안 핵심: ‘형 면제’에서 ‘친고죄’로의 전환
이번 개정의 요지는 ‘전면 처벌 강화’라기보다 피해자 선택권을 살리는 방식으로의 재설계입니다.
1) 가장 큰 변화: 무조건 면제 → 고소하면 처벌 가능
기존에는 일정 친족 관계에서는 무조건 형 면제(처벌 불가에 가까움) 구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친족 범위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정리하면 아래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과거: “가족이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형 면제)”
- 현재: “가족이라도 피해자가 원하면 국가가 개입한다(친고죄 중심)”
즉, ‘가족 간 문제는 덮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에 두자’로 이동한 것입니다.
2) ‘친고죄 일원화’가 의미하는 균형점

일각에서는 가족 간 고소·고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합니다. 그러나 이번 방식은 무작정 처벌을 강화하는 형태가 아니라 고소가 있어야 처벌되는 친고죄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균형점을 갖습니다.
-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형사 절차가 쉽게 개시되지 않음
- 반대로 피해자가 원하면, 과거처럼 “가족이니까 안 된다”로 막히지 않음
가족의 자율적 해결 여지를 남기되, 피해자를 제도적으로 방치하지 않는 구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소급 적용과 특례: ‘언제부터’ 적용되나?
이번 개정에서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적용 시점입니다.
1) 소급 적용 기준
개정된 규정은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선고 시점인 지난해 6월 27일 이후 발생한 사건부터 적용됩니다. 즉,
- 6월 27일 이후 발생한 친족 간 재산 범죄 사건이라면
- 과거처럼 자동 면제 구조에만 갇히지 않고
- 새로운 규정 적용 가능성이 생깁니다.
2) 경과 사건을 위한 ‘고소 특례’

또한 법 시행일로부터 6개월까지는 과거 경과 사건에 대해 고소할 수 있는 특례 조항이 마련되어, 그동안 법의 한계 때문에 대응을 못 했던 피해자들에게도 실질적인 구제 창구가 열리게 됩니다.
이 부분은 단순한 법 기술이 아니라, “피해가 있었지만 법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시간”을 제도적으로 고려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미칠 변화: 피해자 보호의 확대와 가족 관계의 재정의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이 가져올 변화는 크게 두 방향으로 예상됩니다.
1) 경제적 약자 보호의 실질 강화
가족 내부 재산 범죄는 종종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발생합니다.
- 정보 비대칭(돈 관리·사업 운영을 한 사람이 독점)
- 심리적 압박(“가족인데 신고하냐”)
- 생활 기반 의존(가해자에게 생계가 묶여 있음)
이때 ‘형 면제’ 구조는 피해자를 더욱 고립시킬 수 있었습니다. 개정 이후에는 피해자가 원하면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억제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2) 가족 공동체의 ‘신뢰’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선언

이번 개정은 “가족은 무조건 보호한다”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이 범죄의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사회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 신뢰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 신뢰를 이용한 침해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원칙이 법에 반영되면서, 가족 관계 역시 더 투명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재정렬될 여지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알아둘 점: 피해자가 준비해야 할 것들
친고죄 체계에서는 ‘피해자 의사’가 핵심이므로, 실제 상황에서는 아래 같은 준비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 증거 정리: 계좌 내역, 계약서, 문자/메신저 내용, 녹취 등
- 손해 범위 산정: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재산이 유출되었는지
- 법률 상담: 민사(부당이득/손해배상)와 형사(횡령/사기 등) 병행 가능성 검토
- 고소 시점 관리: 특례 기간, 공소시효, 사건 발생 시점 확인
특히 가족 간 사건은 감정적 부담이 큰 만큼, 형사 절차가 목적이 아니라 ‘피해 회복’이 목표인지를 먼저 정리해두는 것이 현실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맺음말: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이 남긴 과제와 기대
이번 친족상도례 형법 개정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어 왔던 재산 침해에 대해, 국가가 최소한의 정의를 세우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사건입니다. 무조건 처벌 강화가 아니라, “원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피해자 권리 회복의 구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물론 제도가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가족 간 갈등의 특수성, 2차 피해, 입증 부담 같은 현실적 난제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변화는 분명합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참아야 했던 피해가, 법 앞에서 ‘말할 수 있는 피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이 개정이 가족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 안의 약자를 지키고 신뢰를 회복하는 안전장치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