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부고 문자, 나이 듦을 체감하는 순간
요즘은 ‘나이 든다’는 말을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먼저 알아차립니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로 부고 문자를 받았을 때,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직장 선배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상주는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직급은 선배였습니다. 막내 시절 제게 일을 엄격하게 가르쳐 주던 호랑이 사수이자, 한편으로는 참 아끼던 동생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를 떠난 뒤 가끔 모임에서 보다가, 어느 순간 5년 가까이 소식이 끊겼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선배는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이럴 때 한 번 보는 거지…”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이유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슬픈 소식’이어야 하는 현실이, 낯설 만큼 선명하게 아팠습니다.
16년 전, 같은 전장에서 버티던 얼굴들

조용히 조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하나둘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6년 전 함께 고생했던 선배들이 어느새 열 명쯤 모였습니다. 얼굴에는 세월이 만든 주름이 조금씩 늘었지만, 말투와 눈빛은 놀랄 만큼 그대로였습니다.
‘16년’이라는 숫자 한 줄에는, 각자의 인생이 통째로 들어 있었겠죠.
제가 다니던 회사는 방만한 경영 끝에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한때는 현재 기업가치 수조원에 달하는 회사와 대등한 수준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배가 불렀던 걸까요. 저는 사표를 쓰고 제 발로 나왔지만, 5년 뒤 구조조정이 닥쳤고 선배들 중 많은 분들이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뒤의 삶은 참 다채로웠습니다.
- 누군가는 대기업 임원이 되었고
- 누군가는 창업해 사업을 하고 있었고
- 누군가는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을 맞이했고
- 또 누군가는 여전히 직장인이 되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리는 달라도 ‘열심히 산 흔적’만큼은 모두의 얼굴에 분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근황, 그리고 건강의 무게
그런데 옆자리에서 들려온 한마디가 공기를 바꿨습니다. 회사에서 똑똑하기로, 인정받기로 유명했던 옆 팀 팀장님의 소식이었습니다. 신망이 두텁고 브레인이라 불리던 분,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던 그 팀장님이 “3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커리어와 성과를 쌓는 속도만큼, 건강을 지키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요.
인생은 종종 ‘잘해온 사람’에게도 가차 없이 현실을 내밉니다. 성실함과 건강은 별개일 수 있고, 유능함과 안전은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건강은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의 일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목표가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됩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 해나가기 위한 기반이 됩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의 그 소식은 제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더 오래”
- “더 성과”가 아니라 “더 지속”
- “더 버티기”가 아니라 “더 돌보기”
밤 10시, 헤어지는 길에 남는 것들

어느새 밤 10시가 되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걸어가는데 옛 생각이 났습니다. 참 치열하게 살았고, 그때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같이 고생하며 웃고 버티던 시간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누가 묻는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 제 대답은 분명합니다.
아니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그때의 나는 분명 성장했지만, 동시에 많이 소진되었습니다.
- 매일 아침 출근 전쟁
- 실적 압박과 평가 스트레스
- 내 시간과 몸을 갈아 넣는 방식의 성과
- 주말에 ‘강제로’ 해야 했던 축구
- 밤 11시가 넘어 끝나던 회식 문화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당연함’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삼켜버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내가 더 좋습니다.
사표 이후의 시간, 불확실성을 견디며 만든 삶의 주도권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자 문득 16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습니다. 호기롭게 사표를 쓰고 나왔지만 현실은 매일이 흔들렸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벼랑 끝에 선 기분. ‘내 선택이 맞았을까’라는 질문이 밤마다 찾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뎠습니다. 치열하게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내 시간을 내가 직접 통제하며 사는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주도권은 거창한 성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현실적인 감각입니다.
- 내가 쉬어야 할 때 쉬는 선택
- 무리한 관계를 정리할 용기
- 내 몸의 신호를 우선순위에 두는 태도
- 성과보다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결정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현실적인 기준들

저는 요즘 이런 기준을 자주 떠올립니다. 누구나 상황은 다르지만, 최소한 방향은 도움이 됩니다.
-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의견’이 아니라 ‘경고’로 받아들이기
- 일정에 사람을 끼워 넣지 말고, 사람 사이에 숨 쉴 틈을 남겨두기
- 성과의 크기보다 생활의 리듬을 먼저 설계하기
- 관계는 ‘연락 빈도’보다 ‘마음의 부채’를 줄이는 방식으로 유지하기
- 오늘의 무리함이 내일의 나를 빚으로 만들지 않게 하기
이 기준들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입니다.
관계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의 마음으로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이럴 때 한 번 보는 거지…”라는 말이 계속 맴돕니다. 물론 삶이 바쁘면 연락이 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끈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의 작은 안부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작은 실천을 합니다.
- 한 달에 한 번, 고마운 사람에게 짧은 메시지 보내기
- ‘나중에 연락해야지’를 일정에 적어두기
- 꼭 친하지 않아도, 존경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이런 행동은 대단한 친절이 아니라, 후회를 줄이는 방식의 삶에 가깝습니다.
다시 다짐합니다: 건강과 마음, 그리고 삶의 주도권

아프신 팀장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빕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내 삶의 주도권을 지키면서 살아가겠다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출근을 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하고, 누군가는 가정을 돌보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합니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이 무엇이든, 나를 잃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너무 늦기 전에 건강을 챙기고
- 너무 멀어지기 전에 안부를 전하고
- 너무 지치기 전에 속도를 조절하며
당신의 삶의 주도권을 당신 손에 꼭 쥐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